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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

    수정당은 북방리 신촌에 있는데 기와집 3동으로 1917년에 창건하였다.

    수정당 내에는 존덕사가 있는데 주벽에 수우당 최영경, 배향에 석정 정홍조를 봉안하였다.

    수정당기

    『 고 대사헌에 추증된 수우당 최선생은 조선의 이름 있는 선비이다.

    선조 때를 당하여 조정이 청명하니 착한 선비들이 함께 나갔으나, 불행히도 당론이 벌어지고 역적의 옥사가 일어나 선생이 그 화에 걸렸다.

    대개 당인이 때를 타고 원수를 갚고자 없는 것을 만들어 스스로 참소에 빠진 것은 이미 당시의 임금도 미워한 바이다.

    그러나 지금 국론이 오히려 정해지지 않았으나 그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도 진실로 논의가 없고 오직 선생을 존경함을 알고 원통해 한다.

    대저 이른바 손언이란 것은 어지러운 나라에 사는 사람의 행위를 이르는 것이다.

    만약 당시 같으면 진실로 치세이었다.

    사대부가 비록 논의의 갈림은 있어도 모두 청류에 의지하여 스스로 군자로 허여 하였다.

    대저 만약 그들이 진실로 군자라면 반드시 선생이 자신을 비방하는 것으로 성내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자신을 비방하는 것을 듣고 성내면 이것은 진실로 소인이다.

    군자가 소인에게 있어서 난세에는 세력에 굴하여 널리 세상을 다스릴 수 없고, 또 그 화를 두려워하여 감히 의논하지 못하면 시비가 장차 어찌 정하여지며 인심을 장차 누가 맑게 하겠는가! 만약 선생이 일찍이 이와 같지 않았고 당신이 이것으로 선생을 무함하지 않았다고 이른다면, 조야에 전하는 기록이 한둘이 아닐 것이니 어찌 모두 무함이라고 이르겠는가? 하물며 감옥에서 나온 한 마디는 친구가 원한을 숨기지 않은 뜻이며 서로 원망하는 말은 아니다.

    만약 과연 서로 원망하였다면 선생의 엄함으로 마땅히 정색하며 대답하지 않고 사절하여 반드시 이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선생 또한 어찌 이 말이 다시 걸려서 죄를 짓게 될 줄 알았겠는가?

    총론하면 선생은 남명의 벽처럼 우뚝 선 기풍을 받아 당의가 횡류하는 날을 만나니 비록 일찍이 힘을 다하여 벼슬에 나가지 않았으나 어진 임금이 진실로 일찍이 풍헌의 직책을 주었다.

    시비가 뒤섞이고 기강이 무너짐을 눈으로 보고 차마 입을 다물지 못하고 때로 말로 하여 청의의 중심이 되었다.

    비록 좀 과격함이 없지 않았으나 요컨대 또한 인인 군자의 마음 쓰는 바이다.

    옛날에 문정공 범중엉이 탁류를 누르고 청류를 칭찬하기를 좋아하니 몸과 이름이 함께 편안하였다.

    한훤당 김굉필 선생이 입으로 남의 악함을 말하지 않았으나 끝내는 사형되었다.

    대게 화복의 이름은 모두 말의 위태로움과 공손함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니 이것이 어찌 선생이 관여할 것이겠는가?

    또한 주역의 도는 진실로 중정을 귀하게 여기지만 그러나 성인에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능할 수 없다.

    그 다음은 바르나 맞히지 못하는 사람인데 오히려 군자가 되는데 해롭지 않다.

    만약 맞히지만 바르지 않으면 소인의 기탄함이 없음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이 거의 드물다.

    이것이 성현이 논하는 고인의 도이다.

    지금 반드시 중용으로서 선생의 허물을 병으로 여기고 그 흉을 숨기려고 한다.

    그러나 백이의 좁음이 청렴하고 완고하며 나약함이 아니고, 동한의 이응.두밀과 만명의 고양 제군자가 실로 스스로 취함을 면치 못하니, 정도를 미워하고 어진이를 죽이는 무리들이 모두 말이 있어 능지함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겠는가?

    선생은 예전에 덕천서원에서 향사하여 문정공 조선생에 배향되었으나, 서원이 철폐된 지 지금 오십년이니 남쪽 선비가 선생을 사모하지만 당이 없었다.

    바야흐로 당 한 채를 지어 다른 때 공경하고 섬기는 장소로 삼고자 한다.

    진양 정씨 영훈군이 그의 일가 석기 섭기와 돈을 내어 지었다.

    대게 그의 선조 석정공이 일찍이 옥산에 관련이 되었으나 힘써 주사의 꾀임을 거절하고 선생의 원통함을 폭포하였다.

    때문에 지금 그 후손이 선생을 사모함이 더욱 돈독하다.

    당이 이미 완성되어 여러 신사들이 모여서 낙성하고 편지를 나에게 보내어 기문을 짓게 하였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나는 선생의 일에 느낌이 있어 말세에 의론이 구차함을 병으로 여겼는데, 분수에 넘쳐 망령됨을 헤아리지 않고 이와 같이 써서 이로서 여러 군자들에게 아뢴다.

    그 당명을 수정으로 한 것을 선생이 임종할 때 말을 취하였다고 한다.

    무오(1918)년 삼월 일 창산 조긍섭 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