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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방리 신촌에 있는 존덕사는 조선 선조조 기축옥사 때 정여립의 무고와, 길삼봉으로 오인되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수우당 최영경과, 수우당을 국문하면서 죄상을 증언하기를 온갖 회유로 달래니 쓸데없는 말이 나올까 바 자신의 혀를 잘라 절의 시키고 수우당을 구한 석정 정홍조를 모신 사당이다. 당시에 수우당은 지금의 진주 도동에, 석정은 진양의 진성에 살았다.

    수우당을 정위로 하고 석정을 배향하였는데, 매년 3월 중정일에 유림에서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수우당 최영경의 상향문에 『 학문은 경의를 으뜸으로 하였고, 기상은 직방을 기루었도다.

    덕을 높이고 바른 것을 지켰으니, 백세가 되도록 더욱 빛나리로다. 』하였다.

    최영경선생은 남명 조식 선생의 제자이며, 조선시대 전기에 뛰어난 성리학자로서 전정경의를 학문의 근본으로 삼아 학문을 실생활 속에 실현하고자 한 당재 명망 높은 학자였다.

    여러 차례 관직에 임명 되었으나 사양하다가 1584년 고정청랑관 이 되어 경서훈해의 교정에 참여한 바 있으나 곧 사퇴하고 진주 만죽당에 은거하였다.

    1589년 정여립 모반 사건 때 무고로 투옥되어 옥사였으나, 1954년(선조27년)에 신원되어 대사헌에 추증되었다.

    정홍조 선생은, 진주 선비로서 최영경선생의 무고사건에 증인이 되어 진주판관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최영경선생의 무고를 주장하여 신원 되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와 같은 선현의 높은 학덕과 선비정신을 추모하기 위하여 1918년 영남유림에 의하여 건립된 의의 깊은 곳이다.